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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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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닥칠 때 '천만다행이다', '하늘이 도왔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꺼낸다. 과학과 기술이 발달한 현대 사회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은 언제 어디든 찾아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오늘날의 재난을 '삼재(三災)'라는 개념으로 이해했다. 이는 인간에게 일정한 주기로 찾아온다고 여긴 세 가지 큰 액운을 말한다. 보통 화재(火災)·수재(水災)·풍재(風災)를 말하지만 질병과 사고, 재물 손실, 인간관계 파탄까지 이 범주에 포함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재앙을 막기 위해 다양한 지혜와 부물(符物)들을 만들어냈다. 그 가운데 호랑이도 큰 몫을 담당했다. 그래서 이번 여정은 호랑이의 벽사(辟邪) 문화(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문화)를 찾아보는 길이었다. 이를 위해 지난 6월 13일과 7월 16일 각각 서울·경기 일원을 방문했다.
재앙을 막는 호랑이를 찾아서
▲ 세화 새해를 맞이해 주고받는 그림으로, 호랑이 그림은 나쁜 액운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정초에 대문에 붙였다.
ⓒ 정재학
첫 번째 목적지는 우리 민속 문화의 보고인 국립민속박물관이었다. 먼저 관람한 유물은 호랑이 '세화(歲畫)'였다. 세화는 새해를 맞아 주고받는 길상 그림이다.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집안에 복을 부르고 재앙을 막는 벽사의 상징이었다.
보통 새해가 되면 용과 호랑이가 그려진 그림이나 글자를 대문 앞에 걸어 한 해의 액운을 막고자 했다. 이를 문배도(門排圖)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용수오복(龍受五福), 호축삼재(虎逐三災)' 즉 용은 오복을 가져오고, 호랑이는 삼재를 쫓아낸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보통 오복은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말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용을 찾아 전국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용' 특별전도 기획했다. 용이 오복을 줄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인생을 살다 보니 그게 다가 아니었다. 결국 현실에 기반을 두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난관과 숙제를 견디고 극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만나게 된 존재가 바로 호랑이와 '호축삼재'였다.
재앙은 스스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강한 기운에 의해 물리쳐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현실의 수호자인 호랑이가 집안의 문지기가 되어 잡귀와 액운을 몰아내면, 그 빈자리가 오복으로 채워진다는 믿음이다.
▲ 삼재부적 삼재를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보통 머리가 세개인 매와 호랑이를 함께 그렸다.
ⓒ 정재학
두 번째 유물은 삼재부적판과 '호랑이' 부적이었다. 삼재부적판은 목판에 새겨진 부적으로 수백 장씩 인쇄되어 백성들에게 전해졌으며, 삼재가 드는 해에는 집안 곳곳에 붙여 재난을 예방하고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는 '심리적 백신'과 같은 역할을 했다. 보통 머리가 셋 달린 매와 함께 호랑이가 새겨진 것이 많았다. 여기도 매와 호랑이가 함께 등장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 호랑이부적 집안의 안녕을 지키고 삼재를 물리쳐 복을 기원하는 호랑이부적
ⓒ 정재학
그리고 '호랑이' 부적을 보자. 일단 호랑이는 서쪽방향, 즉 백호(白虎)방향으로 앉아 눈을 부릅뜨고 포효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 커다랗게 치켜뜬 눈은 잡귀를 노려보고, 포효하는 입은 재앙을 삼켜 버리며, 날카로운 발톱은 액운을 갈기갈기 찢고, 길게 뻗은 꼬리는 집안을 감싸는 보호막으로 여겼다. 그 좌우로 '호가내안녕 금난장군(虎家內安寧 禁亂將軍), 호삼부소재항 복대장군(虎三符消灾降 福大將軍)' 글씨가 적혀 있다. 호랑이가 집안의 안녕을 지키고 삼재를 물리쳐 복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 호랑이부적 호랑이부적 여기저기에 벼슬 관과 대길 등 길상 글자가 적혀있다.
ⓒ 정재학
또한 여기저기에 길상 글자를 기입했다. 귀에 해당하는 곳에는 관(官)자가 있는데, 이는 관운이 터져 벼슬길에 오르기를 기원하는 것이고 그 밑에는 대길(大吉)이 적혀 있다. 그런데 호랑이 목덜미 위로 요상한 글자가 있다. 실제로는 없는, 일부러 만들어낸 글자다. 쇠금(金) 위에 세 개의 벌레 충(虫)이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이는 돈벌레가 마구마구 들어와 부자가 되게 해 달라는 기원일 것이다. 그리고 그 밑으로 부적이 그려져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1만 개의 호랑이로 만든 대호
▲ 경기대학교 소성박물관 중요무형문화유산 옥장 장주원 선생의 작품을 소장 전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 정재학
다음 여정은 경기대학교 소성박물관이었다. 이 박물관은 중요무형문화유산 제100호 옥장 장주원 선생의 작품을 소장 전시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옥으로 다양한 국보·보물들을 재현한 것이 인상 깊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실로 어마어마한 호랑이 작품이 있다고 해서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다음 전시를 위해 전시실이 임시휴관이어서 이미지를 요청해 제공 받았다.
▲ 대만호도 호랑이 호자 문자도로 글자 속에 1만 개의 호자가 그려져 있다.
ⓒ 경기대학교 소성박물관
이미지를 보자. 언뜻 보면 평범한 문자도처럼 호랑이 호(虎)자를 일필휘지 한 것처럼 보인다. 붓으로 머리 。을 찍고 내려왔다가 올라갈 때 비백(飛白)이 보이고 구불구불 두 바퀴 원을 그리고 서쪽 상방으로 가늘게 갈무리한다. 가운데 획은 아래로 곧게 뻗어 하단을 살짝 돌려 세웠다. 그런데 사실 이는 한 붓으로 쭉 쓴 것이 아니고 가는 붓으로 그 모양대로 채워 간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획속으로 들어가 보라. 무엇이 보이는가. 바로 호랑이 호(虎)자다. 작은 호(虎)자 1만 개가 모여 하나의 대호(大虎)가 된 작품이다. 그래서 유물명도 대만호도(大萬虎圖)다. 만(萬)개의 글자가 모여 만족할 만(滿)이 된 작품. 호랑이가 우주 안에 가득하니 어떤 삿된 기운이 범접할 수 있겠는가. 결국 대만호도는 단순한 민화가 아니다. 복을 기원하는 그림이면서 동시에 재앙을 막는 부적이고, 한 폭의 예술 작품인 동시에 생활 속 신앙을 담은 문화유산인 것이다.
부적은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위안이자 공동체가 공유한 희망의 언어였다. 부적에는 한자 주문만 적혀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호랑이의 형상이 함께 새겨진 경우가 많았다. 이는 글자의 신성한 힘과 호랑이의 벽사 능력이 결합될 때 더욱 큰 효험을 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번 여정에서 만난 국립민속박물관의 호랑이 부적도, 소성박물관의 '대만호도'도 결국 복은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한 해, 하루하루의 무사안녕을 빌고 있다. 그 마음 만큼은 조선시대 대문에 호랑이 세화를 붙이던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호랑이는 오늘도 묵묵히 삼재를 쫓고, 사람들은 그 뒤에서 내일을 꿈꾼다. 그것이 우리 문화가 호랑이를 단순한 맹수가 아니라 재앙을 막고 복을 부르는 수호신으로 기억해 온 이유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우로 '호가내안녕
